가죽잎무침
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. 사람은 사계절을 느끼고 살아야 하고 흙과 풀을 밟으며 살아야 한다는 신념 덕분에 다섯 살 때 부터 저는 운좋게도 마당과 '내 상추' 몇포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. 우리집은 골목에서 유일하게 손을 안댄 처음 그모양 그대로의 모습이었어요. 옆집들에서 왜 저렇게 궁상을 떠나 눈치를 해도 제가 성장할 때 까지 그냥 그대로 후줄근한 채였죠^^
겨울이면 찬바람으로 볼이 얼고 가을이면 거실 안으로 낙엽이 쓸려 들어오던 그 낡고 천연한 집에서 아빠랑 함께 저도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끼며 자랐습니다. 가끔은 스피커를 마당으로 내놓고 가을햇살 따스하게 받으며 차를 마시고 밥을 먹었죠.
봄이 오면 옥상에 페인팅을 하는게 젤 즐거운 일이었어요. 우리는 그 페인팅 작업에 나름 이름을 붙이곤 했는데요! 기개는 좋았지만 표현은 조잡해 해마다 우리옥상은 갈수록 촌스러움이 깊어졌습니다. 게다가 옥상도 푸르러야 한다며 온갖 희한한 꽃들을 심어서 동네풍경 다 망쳤죠ㅎ
어린시절의 추억 중 가장 압도적인 건 역시 먹을꺼리였던 것 같아요. 외가에서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오시는 날엔 보따리가 정말 여러개였어요. 다리에 털이 달린 참게장이랑 각종 부각, 자반, 묵나물, 강정이나 곶감말이같은 군것질거리가 담긴 할머니의 보따리 속 음식들은 어린 소소를 흥분하게 하기에 충분했어요.
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몇 년 후.. 아빠도 가버리시고 한동안 추억마저 마비되던 시절이 지나고나니 우리가 함께 먹었던 음식들이 물밀듯 그리워지며 만들어보고 싶어졌던 것 같습니다. 그 그리운 음식들을 만들고 올린게 바로 이 까페에서였습니다. 까페에서 바라봐주는 회원님들이 안 계셨더라면 혼자서 그 많은 음식들을 다 해보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.
어린시절 퍼즐 맞추기처럼 음식들을 하나하나 만들며 그 음식들에 얽힌 추억조각들도 함께 맞춰나갔던 것 같습니다. 그런데 유일하게 어떤 한가지 음식만은 도저히 어떻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됐어요. 외가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후 다신 먹을 수 없었던 그 기묘한 느낌의 반찬. 조그마한 밥그릇에 한숟가락 얹어 비비면 밥이 한없이 맛있어지던 묘한 향기를 가진 먼 전설 속의 반찬같기만 한 그것.
어느날 맛객님에게 어설프게 설명을 시작하니 그건 가죽잎을 말린 거라고. 말린 가죽은 향이 깊숙히 묻히게 되는데 그 향을 끌어내는 요리법이라고 알려주셨어요. 그리고 그 반찬 이름은 '가죽잎무침'이라 한다고 설명해 주셨죠. 단순한 그 이름만 알았더라도 가죽잎을 어떻게든 무쳐봤을건데!!
사람도 이름을 알면서 상대를 아주 빠르게 알아가듯이 음식도 그 이름을 부여해주면 그 음식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는거잖아요. 다행히 올해 황금소나무님에게서 말린가죽잎을 조금 얻을 수 있어 어린시절의 그 가죽잎무침을 만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.
저 이거 처음해보는 거라 실패하면 어쩌나 좀 떨렸어요 ~
1. 말린 가죽잎이예요. 이렇게 말려진 가죽잎은 팬에 수분만 날린다 싶게 덖어줍니다.
2. 가죽을 무쳐먹을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조선간장을 사용하면 너무 짤 거 같아 염도를 확 낮춰 만든 맛간장을 사용했습니다. 맛간장은 다 아시다시피 십수가지 재료들을 넣고 장을 달여주는 거~
3. 파는 없어서 생략했지만 넣어주면 좋구요. 간장에 들기름 듬뿍, 다진마늘과 깨만 넣고 양념장 만들기.
4. 덖어놓은 잎이 가능한 부스러지지 않게 나무젓가락으로 살살 양념과 잘 섞어주구요
5. 완성입니다.
이렇게 완성된 가죽잎 무침은 밥에 비벼먹거나 밥위에 이렇게 얹어먹으면 그 독특한 향에 압도되어 아무리 입맛 없는 날이라도 밥한그릇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. 여름철엔 물 말은 밥에 젓가락에 콕콕 찍어먹으면 가죽향이 온통 입안에 울려퍼지죠.
우리 외할머님의 엄마네 집에 있었다던 하늘을 찌를듯 커다란 참죽나무를 본적도 없고 이미 그 나무는 베어져 버린지 오래라 다신 찾을 수는 없지만 봄이 되면 맛있는 이파리를 가득히 연록색으로 피워올리는 그 나무가 마음속에서 살아납니다. 그 나무에서 나온 잎으로 만든 자반과 장아찌가 내 기억속에 강한 울림으로 남아있어 올 한해 내내 참죽자반을 만들고 장아찌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.
그동안 잃어버렸던 저 '가죽잎무침'이라는 이름까지 찾아서 참 좋습니다! 어서 참죽새순 돋는 봄이 와서 우리방 식구들과 떠들썩하게 함께 가죽무침 해보고 싶어집니다^^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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